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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란지

medium detail view
컬렉션에 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스트릿 룩에 담긴 스토리. 그 가치를 아는 더 센토르와 베이비센토르의 예란지 디자이너를 만났다. 


에디터 : 김하은 | 포토그래퍼 : 김범수 | 디자이너 : 조윤지


모든 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10년 동안 한 길만 걸었다. 중간에 잠깐 쉬어가기도 했지만, 세컨드 레이블까지 함께 끌고 왔으니 그 집념과 근성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더 센토르(THE CENTAUR)와 베이비센토르(BABY CENTAUR)의 수장 예란지는 1년에 두 번 하기도 힘든 컬렉션을 네 번이나 치른다. 최근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더 셀렉츠’에 더 센토르를 입점시키고, 오는 10월에는 중국 진출까지 앞두고 있는 그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독보적인 감각으로 신비로움까지 자아내는 더 센토르. 엄마를 쏙 빼닮은 베이비센토르가 2018 F/W 시즌 ‘사적인 음모론의 글래머’로 돌아왔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페미닌한 스트릿 룩이 무엇인지 보여줄 디자이너 예란지를 만나 베이비센토르의 새로운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신사 가장 만나기 어려운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 해외 출장 중이더라. 어딜 다녀 온 건가? 


예란지 곤란하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전, 소호의 쇼룸 ‘더 셀렉츠’가 오픈해 뉴욕에 다녀왔다. 국내의 10개 브랜드가 입점하는데 더 센토르도 함께 하게 되어 오프닝 파티에 참석했다. 도버 스트릿 마켓이나 곧 오픈하게 될 뉴욕의 10 꼬르소꼬모의 바이어들도 만났다.



무신사 오늘도 인터뷰 직전까지 미팅을 하고 있지 않았나. 돌아오자마자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쁜 건가?  


예란지 10월 16일에 있을 서울 패션위크를 준비하고 있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쇼룸이 오픈한 데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오늘 아침에 팀원들이 인터뷰가 있다고 일러주었는데도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와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메이크업도 안 한 민낯이었다(웃음).



무신사 그 덕분에 1층 베이비센토르부터 2층 더 센토르까지 매장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재기발랄한 룩 만큼 독특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할머니 댁에 있을 법한 자개장, 교자상을 이용한 가구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런 가구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건가?


예란지 1층 카운터에 있는 가구는 교자상 여러 개를 엮어서 만든 것이다. 길종상가의 박길종에게 개인적인 친분으로 의뢰해서 제작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테이블도 거울이 달린 자개장을 이용한 거다.  




무신사 쇼룸을 둘러보니 메인 레이블인 더 센토르가 추구하는 코리아 클래식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예란지 코리아 클래식에는 디자이너로서 내 정체성을 탐구한 결과를 담겨 있다. 해외에서 공부했다고 그쪽의 디자인을 어설프게 따라하거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나온 디자인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패션은 클래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의 잔상은 이곳에서의 삶 속에 남아있다. 특히 새로운 문물이 쏟아져 들어올 시기에 우리 것과 외래종이 뒤섞인 시절을 좋아한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그 시기에 발견하기도 한다. 세련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런 무드를 우리 옷에 녹이면서 유머와 낭만, 로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무신사 더 센토르의 옷을 보면 마치 엄마의 옷장에서 꺼낸 듯한 느낌을 준다.


예란지 개인적으로 ‘엄마의 옷장’ ‘빈티지’ 그런 말이 참 싫다. 코리아 클래식이란 말로 우리의 무드를 한정하는 것도 그리 달갑진 않다. 세상의 말은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모두를 이해시킬 언어로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단어를 선택했을 뿐이다. 난 어떤 정해진 무드를 만들고 싶진 않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해. 애매한데 매력적이네?’ 그런 정도의 느낌을 주었으면 한다.



무신사 더 센토르의 옷을 마주하면 “이걸 입고 도대체 어딜 가면 좋을까?”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예란지 더 센토르는 메인 레이블로 내 페르소나를 담은 브랜드이다. 하이패션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그렇게 튀고 과장된다는 느낌은 없는데도 종종 세 보인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 베이비센토르는 더 센토르보다 ‘웨어러블’하면서 페미닌한 스트릿 무드가 짙은 세컨드 라인이다. 베이비센토르를 보면 평상시에 입기 좋은 옷이 많다고 느낄 것이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상의는 더 센토르, 하의는 베이비센토르의 제품이다. 이렇게 믹스 매치해도 꽤 잘 어울리지 않는가? 



무신사 이쯤 되니 당신에게 웨어러블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예란지 나는 정말 우리 옷이 정말 웨어러블 하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아, 얼마 전에 드라마에서 회사원의 모습을 봤는데 저들이 우리 옷을 입으면 정말 튀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TV도 잘 안 보는데다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기에 회사원들이 출근할 때 어떤 옷을 입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웨어러블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기준에 따를 수는 없다. 내 정체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웨어러블함의 정의를 새로이 하게 됐다. 디테일을 많이 넣지 않아 옷을 입을 때 불편하지 않고, 한 가지 아이템만 입더라도 우리의 무드가 드러나는 것. 나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무신사 일반적 기준을 가진 내게도 웨어러블한 베이비센토르의 이번 시즌 테마는 무엇인가?


예란지 ‘사적인 음모론의 글래머’다.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망상이 극대화됐을 때의 화려함에 관한 이야기를 컬렉션으로 담았다. 나는 쓸데 없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망상에 빠지곤 한다. 떠 다니는 망상을 수집해 그 속에 담긴 화려함을 룩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이상하고, 또 얼마만큼 매력적일까? .



무신사 꼭 그렇게 스토리텔링을 해야만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나?


예란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굳이 디자인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토리텔링에 힘을 쏟지 않는 건 바쁘기 때문이다. 개연성을 찾고 디테일을 더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난 이렇게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디자이너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트렌드에 따라 옷을 만들고 컬렉션에 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잘하는 디자이너라면 판타지를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 입 생 로랑(Yves Saint Lauren)은 “패션은 인간이 질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미적 환영”이라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내 컬렉션에서 판타지를 읽어 내길 원한다.



무신사 망상들이 모여 폭발했을 때 만들어지는 글래머러스함이라. 솔직히 잘 그려지진 않는다.


예란지 프린트, 원단, 패턴 등을 가지고 여러가지 조합을 만들어봤다. 어쩌면 그 모습이 조금 낯설어 보일 수도 있겠다. 루즈 핏의 티셔츠에 핫픽스로 디테일을 주거나, 박시한 티셔츠에 레이스 커프스를 매치한다 던지 등.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가 꽤 재미있다. 



무신사 이번 시즌에 가장 주력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예란지 패딩이다! 이걸 만들려고 4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지금은 나오자 마자 솔드아웃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구스다운을 사용해 퀄리티가 뛰어나고 핫픽스로 포인트를 줬다. 베이비센토르의 헤비 아우터로는 패딩 제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무신사 이번 시즌도 그렇지만 베이비센토르는 계속 같은 모델을 기용하는 것 같다.


예란지 스완이라는 친구인데 우리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친구다. 처음 함께할 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모델이었는데 지금은 잘 돼서 소속사도 생기고 유명 매체와 화보 촬영도 하더라. 그녀는 프로포션이나 생김새 모든 것이 우리 옷을 소화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일본의 혼혈 모델이자 배우인 데본 아오키(Devon Aoki)의 느낌도 나고. 그녀가 잘 되서 정말 좋다.



무신사 그녀가 승승장구한 것 이상으로 베이비센토르도 성장하지 않았나. 지난 10년 간 더 센토르와 베이비센토르를 이끌어 온 소감이 궁금하다.


예란지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탓일까? 옛날에는 제대로 놀아 보지도 못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내 청춘이 그렇게 가여웠다. 그래서 중간에 모든 걸 접고 공백기를 갖기도 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나만 생각했나 모르겠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끈을 놓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됐을 것이다. 어쨌든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휴식기를 갖기 전과 후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나보다는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 또 우리 브랜드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내가 이거 하나만큼은 온전히 내 손으로 마무리를 해야 죽기 전에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신사 앞으로의 계획은?


예란지 내가 정한 테마가 그대로 옷에 구현되는지, 또 그 옷이 얼마만큼의 매출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잘했다’의 기준이 됐다. 내 기준에 잘했다고 할만한 컬렉션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 당장 10월에는 중국 쇼룸과 계약을 앞두고 있다. 10월 16일, 서울 패션위크가 끝나면 베이징에서도 쇼를 할 예정이다. 중국 시장에서 많은 매출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파이’를 키워볼 생각이다. 두 개의 브랜드를 나 포함 6명이 운영하고 있다. 지금 일하는 친구들은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그렇지만 6명이 생산부터 컬렉션 준비, 해외 수주에 홍보 마케팅까지 모든 걸 직접 하기엔 팀워크가 좋더라고 힘에 부친다. 이제는 몸이 좀 덜 힘들고 개인적인 삶도 영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때다.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라도 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내년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디자이너 예란지는 아트와 대중, 패션과 예술 사이에서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옷을 추구한다. 대학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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